데미안 서문

 그것을 살아 보려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나의 이야기는 아득한 옛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할 수만 있다면,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 내 유년 시절의 초기부터, 더욱 더 그 너머의 먼 조상 때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런지도 모른다.

 

 

 

작가들은, 막상 그들이 소설을 쓸라치면, 그들 자신이 마치 전능의 하나님이라도 되는 체 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의 인생사를 훤히 내려다보고,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으며, 마치 하나님이 몸소 이야기하듯 거리낌 없이 자신이 어디서나 핵심을 집어내어 서술해 낼 수 있는 양 굴곤 하는 것이다.

 

 

 

나는 그럴 수 없다. 작가들도 그래서는 안 되듯이. 또한, 내 이야기는 그 어느 작가가 자신의 소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보다도 한층 더 내게는 소중한 것이다. 이것은 다름아닌 나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 인간의 이야기, 즉 그것은 가공의 인물, 상상할 수도 없는 이상적 인간-도대체 실존하지도 않는 인간이 아니라, 현실의 인간이요, 단 한 번 이 현세를 살아가고 있는 한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살고 있는 인간’ 이라는 의미가, 현대에 있어서는 예전보다 더 애매해졌다. 인간은 누구나 자연의 단 한 번뿐인 귀중한 실험이다. 그런데, 현대에는 그런 인간을 대량학살하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에 우리가 단 한 번뿐인 인간 이상의 것이 아니라면-즉, 우리들 하나하나를 총알 하나로 깨끗이 세상에서 말살해 버릴 수 있다면, 구태여 이러니저러니 하는 말조차가 이미 무의미한 것이리라.

 

 

 

그러나, 그 어떤 인간이든간에 모두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일회적이고, 아주 특별하며, 주목할 만한 존재인 것이다. 즉, 세계의 여러 현상이 그곳에서 오직 한 번뿐, 두 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는 모습으로 교차하는 하나의 점(點)그야말로 특수한 단 한 번뿐인 점(點)인 것이며, 그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중요하며 불가사의한 점에 틀림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어느 인간에 관한 이야기도 소중하며 영원하며 거룩하고, 그 어느 누구건 적어도 살아 있고 자연의 의지에 순응해 가고 있는 한, 그 자체가 충분히 놀라우며 주목할 만한 존재인 것이다. 그 어떤 인간이건 모두가 영혼으로 형성된 존재요, 살아있는 존재로서의 고뇌로 괴로워하며, 누구 속에서든 한 구세주가 십자가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그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다. 그러나 그것을 많은 사람들은 감득하고 있고, 그 덕택으로 편안히 죽어간다. 내가 이 이야기를 쓰고 나서 편히 죽어갈 수 있을 것 같이.

 

 

 

나는 자신을 ‘깨달은 사람’ 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는 구도자(求道者)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나는 이제 별 위나 책 속에서 길을 찾지는 않는다. 내 피가 몸 속에서 속삭이는 가르침에, 나는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이야기는, 즐겁거나 재미있는 것이 아니다. 허구의 이야기처럼 감미롭거나 조화를 이룬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이제 더는 자신을 기만하려 하지 않는 모든 사람의 삶이 그렇듯이, 무의미와 혼란 및 광기와 꿈의 맛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어느 사람의 일생이건간에, 그 모두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기 위한 하나의 노정이다. 그것은, 넓고 큰 한길이 될지도 모르고, 좁고 가느다란 오솔길의 암시에 그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건, 완전히 그 자신이 된 선례는 없다. 그런데도, 누구나가 자기 자신이 되려고 애쓴다. 그 노력은, 어떤 이의 경우에는 뚜렷한 자각을 수반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또 어떤 이의 경우에는 한층 자각적일는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힘 여하에 달려 있다 할 것이다.

 

 

 

누구에게든, 인간은 출생의 흔적이라고나 할 배꼽이 있다. 이것은 죽을 때까지 떼어 버리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인류가 발생된 태고적의 점액이나 알껍질은 끝까지 인간을 따라붙어 다니게 마련이다.

 

 

 

 끝내 인간이 되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개구리 또는 도마뱀이나 개미로 끝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더러는, 머리는 인간인데 몸뚱이는 물고기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누구나가 인간이 되기를 지향하며, 자연이 던져 준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는 모두, 같은 성분을 타고 난다. 어머니는 공통인 것이다. 같은 협곡으로부터 기어나온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그같이 깊은 데로부터 내던져진 하나의 실험체인 우리는, 저마다 자기의 목표를 향하여 노력한다. 우리는 서로, 말하면 납득이 간다고는 할 수 있다.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완전히 해명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당사자, 자기 자신 밖에는 없는 것이다.